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영과 육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늘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진정으로 영과 육을 함께 보듬고 치료할 수 있는 때가온 것 같아 기쁘고 두렵고 설렙니다.”
30년이 넘는 미국에서의 의사생활 동안 그의 머리 속에는 부모님의 기도가 맴돌았고 가슴 한켠에는 늘 부족하고 허전한 그 무엇이 떠나지 않았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명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권위 있는 종합병원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뭔가 그는 늘 허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때가 됐다. 모태 기독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단순히 인체의 직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질병도 보듬고 치료할 때가 됐다.
지난 1월 잔스크릭에 ‘헬스1케어 메디컬 센터 (강창석 내과)’ 를 개원한 강창석 (59) 원장이 바로 그다.
의사이자 신학자 폴 튜니어를 모델로…
“지금까지 큰 조직 속에서만 일 하다가 이제 나이 먹어 크진 않지만 내 병원을 차리려니 신경 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구요, 비즈니스 하시는 분 같으면 쉽게 할 일도 제게는 만만치 않네요.”
개원 한 지 약 보름 뒤에 만난 강 원장의 첫 인상은 강했다. 그러나 상대방을 압도하는 듯한 강함은 곧 부드러움으로 다 가왔고 시간이 더 흐르자 다시 강함이 들어 왔다. 인터뷰 말미에는 겨우 2시간의인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속내를 털어 놓는 털털함도 드러냈다.
먼저 그의 의대 진학 동기부터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의대 진학을 꿈꿨어요. 초등학교 때 누구나 들었던 슈바이처 박사도 영향을 미친 것 같구요. 또 중학교 때 만난 매형도 의사였죠. 무엇보다 부모님이 제가 영과 육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늘 기도하신 것이 자연스럽게 의대 진학으로 이어졌다고 할까요” 강원장의 증조부모와 부모님은 ‘동방의 예루살렘’ 으로 불렀던 평북 선천 출신이다. 선천은 당시 조선에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온 지역 중 한 곳이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때 그의 신앙 멘토였던 당시 영락교회 임영수 목사에 의해 알게 된 폴 튜니어는 그의 의대 진학은 물론 평생 의사로서의 모델이 됐다. “의사이자 신학자인 그 분은 영과 육을 하나로 보고 치료해야 온전한 치료가 된다고 생각한 분이에요. 임 목사님은 폴 튜니어를 신학적 관점에서 봤다면 저는 의학적 관점에서 그를 받아 드린 셈입니다.”
하지만 후에 의사가 된 뒤에 그는 현대의학 현장에서는 육만 강조되고 영적인 치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자주 좌절했다.
한국에 최초로 응급의학 도입
그는 군사독재 정권이 시대를 장악한 1970년대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대학을 졸업했고 결국 졸업하자 마자 미국으로 향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가죽들이 이미 미국에 이민 온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대학 때 미국에 올 생각도 했지만 의대를 중도에 포기 하기가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의대 졸업한 뒤에야 미국에 와서 당시 외국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자격시험에 응시한 뒤 인턴과 레지던트를 시작했어요”
그가 의사로서의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세인트류이스는 사실 한인들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는 한인환자를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도중에 한국으로 아예 귀국할 뻔 한 적도 있었다.
의대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밑었던 분이 대규모 병원을 건립하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처음에는 한국을 드나들며 병원 건립을 돕다 막판에서는 아예 병원에서 속식을 하며 병원건리을 진두 지휘했다. 그 와중에 그는 병원이 운영하는모 대학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응급의학과를 개설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응급의학과를 개설했고 처음 얼마 동안은 가의도 맡아 했다.
“마침내 병원이 완공되니까 자연스럽게 병원에 남아 줄 겻을 요청 받았고 숙고 끝에 그러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미국에 있던 아내와 딸들이 싫다는 거에요. 어떡합니까?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가족을 선택할 수 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해서 다시 미국의사로 남게 된 그가 애틀랜타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애틀랜타에는 처형과 아내의 삼촌이 계셔 10여 년 전부터 추수감사절 때를 비롯해 자주 왔다 가곤 했어요. 날씨도 좋았고 한인타운도 맘에 들었어요. 또 사실 그 동아 병원 매니지먼트 등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조용히 평생 의료인으로 살고 싶더라구요. 그러기엔 애틀랜타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는 일찍부터 그의 처형이 조지아에서의 개업을 추천해 1995년 이미 조지아 가이선스를 취득했다. 그래서 당시 지미카터 블러버드 부근에 자리까지 봐두기도 했다.
“장소야 어디가 됐던 개업을 해야 영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조직에서 더나는 아쉬움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곳에서는 할 만큼 했다고 행각해요, 또 직위나 명예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의사로서 의미잇는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영과 육을 치료할 때만이 기쁨이 넘쳐나는 것 아니겠어요.”
미국 의료제도 대안 컨시에즈 시스템
개업과 함께 강 원장은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헤택을 주기 위해 멤버쉽 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자칫 병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오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도 이것이 보험이 없거나 있어도 별 볼일 없는 보험을 같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최선을 방법일 것이라는 것의 그의 설명이다. “저희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1차 진료가 가능해요, 그래서 저희 병원 멤버쉽에 가입하고 응급상황을 커버할 수 있는 의료보험 중 저렴한 것을 골라 가입하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의료비 걱정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죠.”
이 대목에서 그는 현직 의사로서 오바마 케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보험 제도 위해 공보험 개념을 도입하다 보다 무리가 따르고 결국 같가지 부작용과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처음 발생했던 온라인 장애는 빙산의 일각이죠. 아마 정부의 강권대로 오바마 케어에 가입을 했더라고 커버리지 등 많은 문제점들이 튀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바마 케어에 가입했더라도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종전처럼 엄청남 치료비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나오게 될 거구요.”
그래서 결국 미국의 의료제도는 컨시에즈 의료제도 (Concierge Medicine)가 그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의사에게 연회비를 내고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의료제도인 컨시에즈 시스템은 이미 주류 언론이나 의료계에서도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미 의료제도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관건은 회비 수준과 인식의 문제인데요. 특히 한인들은 자주 이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회비를 내는 행위를 아까워하는 경향이 강해요. 하지만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환자들이 가장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는 수준에서 회비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무엇보다 회비를 내고 언제든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병원과 의사가 있다는 것은 미국생황에선 커다란 근심 하나를 덜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또 이 같은 컨시에즈 시스템을 통해서만이 평생 의사로서 지향하고 있는 육은 물론 영의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의 그의 생각이다.
“중용이 건강의 최대 비결”
개업 준비를 하면서 그가 가장 머저 싱경을 쓴 부분은 당연히 병원 이름. 일단 한인 미디어에는 그의 이름을 따 ‘강창석 내과’ 로 알렸지만 공식 병원명칭은 ‘헬스1케어 메디컬 센터’ (Health 1 Care Medical Center) 다. 하지만 아직 100% 확정된 것은 아니다. 조지아는 물론 전국적으로 같은 병원 이름과 로고에 신경을 쓰는 것은 그의 병원 미래에 대한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닌 한 환자를 온전히 치료하는 병원을 최소한 전국에 20개 이상은 세울 겁니다. 애틀랜타는 그 시발점이 되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병원이름이 겹치지는 않는지 그리고 병원로고도 모든 이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더불어 그의 신안생활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의료선교도 나머지 그의 삶을 지켜주는 몫이다. “벌써 12년째 매년 의료선교활동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축석하는 교회에서 해외선교가 없어 아들과 아들친구들을 데리고 과테말라 의료선교활동을 다녀오기도 했구요. 해외의료선교는 해마다 빠지지 않고 다녀 오고 싶은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인텨뷰 말미 의사로서 평소 건강은 어떻게 챙기는 지도 궁금했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어요, 잘 먹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고죠. 굳이 말하면 세상에는 중요한 건강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고… 의학에서도 적정치가 있죠. 너무 낮추면 좋지 않아요. 영양이 과하면 좋지 않고 너무 음식을 가리면 그 와중에 ‘미스’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죠.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운동도 마찬가지구요. 모든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 같습니다. 중용이 가장 중요한 건강의 원리인 셈입니다.”
–KBS 365 ATL